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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규 나이 학력 고향, 결혼과 아들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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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영규는 대전 중구에서 1953년에 태어났으며, 중고등학교 때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힘든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15살에 신문을 돌리다가 불독에겐 물린 뒤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학교 담임선생님의 “넌 훌륭해질 거라고 믿는다.”란 말을 듣고 용기를 냈습니다. 그 이후 성악가를 꿈꿨으나 경제적 사정 때문에 포기하고 술집 웨이터, 책 외판원 등의 생활을 하다 서울이전에 입학해 배우의 꿈을 키웠습니다.


대학로의 유명 감독가인 오태석 밑에선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소극장에선 13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이때 매우나 고생을 해서 1981년에는 폐결핵에 걸렸네요. 체중이 42kg까지 줄었고, 뼈만 남아 사람에 얼굴이 아닐 정도가 되었습니다. 당시 "살 희망이 별로 없습니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으며, 무대에선 죽자고 결심했을 정도였습니다.



폐결핵을 앓던 시절 간호해주던 서울예대 5년 후배와 1983년 결혼했습니다. 결혼할 때 처가의 반대가 심했습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1985년 1월 6일에 방영된 MBC 베스트 극장 '초록빛 모자'에 서갑숙과 같이 참석하여 자연스러우면서도 힘있는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1986년 MBC 특채 탤런트로 선발되어 활동하였습니다.


활동 초기 이미지는 진중한 로맨티스트로, 정극 연기에 능숙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1988년 야망이 많은 남자 친구 임채무에겐 배신당한 김희애의 복수극을 그린 '내일 잊으리'에선, 김희애를 묵묵하게 지켜주면서 따뜻하게 감싸는 모습을 보여줘 많은 여성팬을 확보했습니다. 당시 김종찬과 같이 주부들에겐 가장 관심 있는 연예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1989년에는 앨범 '카멜레온'을 발표, 하루 12개의 행사에 참석할 정도로 대박적인 관심을 누렸네요.



그러다가 약 8년 가까이 퇴보기를 겪었습니다. 1996년에는 이혼을 하였고, 1997년 3년 연상의 유명 디자이너와 재혼을 했습니다.


거의 관[棺] 속에 들어가 있었던 그를 다시 끄집어낸 작품이 바로 1998년 3월에 시작한 SBS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였습니다. 거기서 미달이 아빠 "박영규" 역할을 맡은 뒤로는 기존의 엄숙하던 모습에선 얍삽하고 이기적이며 사고와 민폐를 잘 끼치면서도 되게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케릭터를 맡아 코믹한 이미지로 변신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특별히 이불킥하는 연기가 일품이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도 완전히 진지한 이미지로만 간 건 아닙니다. 순풍산부인과의 미달이 아빠처럼 촐싹맞은 속성이 아니었을 뿐, 비중이 작은 역할을 했던 경우 중에는 진지한데 무식하다거나 하는 식의 코믹한 역할도 했었습니다. 1995년 작품인 '옥이 이모'에선도 옥이 이모가 장년이 된 이후 시점인 방영 후반에 주인공[옥소리]을 짝사랑하는 동네 가게 사장으로 참석해서 개그연기를 했었습니다. 배운 사람인 척하면서 옥이 이모를 유혹하기 위해 노래방에선 영어 노래를 부르는데요, 12월이라 징글벨을 골랐고 영어 가사를 몰라, "징글벨 징글벨 징글징글벨~ 징글징글징글징글 징글징글징글징글 징글징글벨"이라고[살짝 촐싹맞았습니다.] 불러서 같이 있던 다른 사람들이 "야 저게 영어 노래냐. 징글벨이 아니라 징그럽습니다"고 하는 코믹씬이었습니다. 물론 극중 그 외의 연기는 무식한데 유식한 척하면서도 진지한 장년 남자 역할 정도의 연기였지만... 참고로 진짜 박영규는 젊을 때부터 성악을 하고 싶어했던 만큼 여러 영어 노래를 할 줄 알고, 올드팝송을 한 가요 프로그램에선 유창하게 부른 적도 있어서 그 역할과는 다릅니다..





이후 2003년 SBS에선 방영한 '똑바로 살아라'에선도 유사한 케릭터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1999년 '주유소 습격사건'에선은 찌질한 사장, 2002년 '라이터를 켜라'에선은 찌질한 국회의원 역을 맡기도 했습니다.


2004년에는 '해신'에 출현, 작중 최수종의 정신적 지주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써 좋은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본래 박영규는 해신 이전 2001년 작품 신귀공자에선 여주인공 최지우를 뒤에선 돕는 재벌집 막내삼촌역으로 젠틀한 이미지를 선사해서 대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2003년 작품 다모를 통하여서 진중한 포도대장의 연기로 대호평을 받았으며 역모를 꾸민 친구를 어떻게 대죄할지 고민하는 씬은 가히 다모폐인에겐 압권이었습니다 관심받을 정도로 심각한 호연을 펼쳤다. 이걸 기반으로 이후 박영규는 똑바로 살아라 같은 시트콤을 했어도 여전히 해신같은 진중한 작품에 섭외 될수 있었습니다.


2004년 미국에 유학 중이던 아들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등지게 되었고 이에 많은 충격을 받고 연예계를 잠시 떠나있었습니다.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만난 김수륜과 3번째 결혼을 한 뒤, 2010년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2'로




 5년 만에 복귀에 성공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필리핀에선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후 2013년 MBC 일일극 '오로라 공주'에 참석했습니다., 갑자기 드라마에선 사라져 버렸네요. 해당 드라마의 작가인 임성한의 횡포에 의해 전격 하차된 것 입니다. 그로 인하여 마음고생을 겪었습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014년 KBS 1TV 사극 '정도전'에선 이인임 역할로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당시 드라마 경력이 일천한 정현민 작가는 워낙 본 드라마가 없습니다보니 그저 박영규를 시트콤에나 나온 일개 희극배우 정도로 착각하였고 이 때문에 진중한 이인임 연기를 극력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용의눈물 막내pd였던 강병택 pd는 그간의 사극 경험이 풍부하고 다양한 사극을 접했습니다보니 박영규의 연기력을 알고 있었고 정현민을 설득하면서 여러 작품을 소개하였고 그 작품들을 섭렵한 정현민은 그제서야 박영규의 이인임 연기를 수락했습니다고 합니다. 사극에선 악역을 맡은 자가 그렇게 몸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연기간 것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악역이던 이인임이 그를 통하여 정치적인 식견을 가진 현대적인 인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케릭터 자체도 매력적인 악역인데다, 배우의 명연기까지 어울리다보니, 정도전이 각성하기 이전인 드라마 초반부를 하드캐리했습니다.





그러한 이인임 역할로 인해 2014 KBS 연기대상에선 장편 드라마 부문 남자우수연기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날 수상소감에선 수상의 기쁨, 먼저 떠나간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밝혔으며, 하늘에 있는 아들이 듣기 바란다며 축가를 부른 후 유사하게 자식을 잃은 세월호 유가족을 위로하는 수상소감을 남기며, 드라마 못지 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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